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L/b 2020. 11. 10. 03:17

 

 

from '죽은 자의 집 청소', 김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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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

시도, 철도 모르고 찾아오는 인간의 상상이란 잔인하다.

 

2.

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?

 

3.

문은 여느 때처럼 아무런 암시나 동요가 없다. 결코 먼저 나서서 설득을 시도하는 법이 없다.

3-1.

문 또한 내가 제시하는 다른 설득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.

 

4.

부디 잘 지내렴.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방해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서 마음으로나마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.

 

5.

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은 남긴다고 했던가?

그 속담 뒤에 스며 있는 명예 지상주의와 지독한 인간 본위의 세계관이 늘 못마땅했다. 이름과 가죽을 남기는 일 따위가 죽음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? 동물은 인간의 노리개나 한낱 장식품이 되고자 존재하지 않는다. 그 속담만은 이 세계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. 무엇보다 먼저 내 머릿속부터.

 

6.

언제나 고통이란 더 극심한 고통에 순위를 내주곤 잠잠해지게 마련이다.

 

7.

생각해보면 나는 작고 사소한 것에 더 크게 흔들렸던 것 같다.

 

8.

제가 심란한 이유는 어쩌면 이미 거기에 없는 무언가를 여전히 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.

 

9.

죄책감이 내가 발을 디디고 선 땅이다.

되돌아보면 언제나 죄책감 위에 새겨진 기나긴 발자국이 저 멀리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다. 움푹 들어간 자국이 깊고 선명하다.

 

10.

우리는 은연중에 일이 고될수록 보람도 덩달아 커진다는 믿음이 있나보다.

 

11.

동료 여러분.

저는 염치도 모르고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습니다.

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?

 

12.

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.

12-1.

그곳이 어디든, 우리가 누구든, 그저 자주 만나면 좋겠다.

 

13.

욕실에 벌거벗고 선 채 울고 싶어도 눈물 한 방울 내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죄 없는 샤워기만 하릴없이 뜨거운 물을 쏟아내고 있다.

 

14.

요컨대 인간은 애초에 자신을 쉽게 죽일 수 있도록 탄생하지 않았다.

Posted by nighthawk_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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