L66

L/l 2016. 1. 3. 17:15

 쓰기 전에 쓰고 싶은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. 분명 쓰기 시작할 때에는 펼쳐 놓고 싶었던 말들이 있었으나 지나고 나면 지나치게 멀리 와 있는데, 그곳까지 간 것이 아까워서 혹은 내가 멍청하거나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, 그곳에서 엔간히도 헤메다가 결국에는 펜을 집어 던지곤 한다. 덕분에 방 청소를 할 때마다 침대 밑에서는 펜들이 한웅큼씩... 지식들을 내 것으로 온전히 녹여 내어야 그것들을 가지고 가치로운 무엇인가를 써낼 수 있을 텐데 아는 것이 없어서. 나의 무지함에 치를 떨기 시작한지 벌써 이년이 지났지만 노력도 발전도 없이 치를 떠는 재주만 늘고 있다. 작년 한해의 절반동안 쓰려고 했던 글들이 양손으로 세기에 모자라건만 그 글들은 모두 '그만쓸래'로 끝난다. 때려치울 때에는 눈물도 날 뻔 했고 보통은 눈물 대신에 분노의 야식으로 인한 위산이 나오곤 했지만 지금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그때에 때려치우길 잘 한 글들 뿐이다. 저열함이 가득해서 차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. 그럼에도 끝까지 부릅뜨고 읽은 것은 또 뭐람? 이 글을 노트북에 두드려본 것은 최근 들어 가장 잘한 일이자 때려죽일 일이라 할 만하다. 펜이 아니라서 집어던질 수가 없기 때문에 부득불 두드려야 하므로... 집에 가면 그만쓸래들 모두 묶어다가 폐휴지함에 집어넣고 노트북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노트를 펼쳤다가 그만쓸래 했다가 펜도 던지고 종이도 찢고... 

Posted by nighthawk_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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