L70

L 2016. 11. 11. 00:49




1.

 준비하며 행복했나? 잘 모르겠다. 행복은 그 상태 및 상태로의 도달까지 걸린 과정 중의 상당부분을 고의적으로 은폐한다. 무시할 수 없는 번민들과...하여 행복하다, 혹은 했다고 말하며 어딘가 도려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. 그렇기 때문에 과정도 결과도 행복했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겠다. 고민도 고통도 둘이 정사하여 낳은 악몽같은 고뇌도 소중하다. 괴로웠으나 즐거웠다. 재미있었다. 돌이켜보면 '더 잘할 수 있었기'에, 지금은 그 결과를 어떻게든 부여잡고 살아내야 함에도 후회는 내일을 향한다.



2.

 내 일상이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것을, 나는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한 채 때로는 멍하게, 또 가끔 발만 동동 굴러가며 하염없이 치열하게 보고만 있다. 이 일상이 우두커니 깨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. 나는 내 습관의 집합체이고, 악습은 더할나위 없으되 양습은 구축당한지 오래이나, 흡사 내 정강이뼈에 묶인 사슬을 자르기도 전에 미리 내지른 비명에 목이 쉬었다. 부적절한 위치에서 발음되는 협착음으로 가득한 생각은 신경의 발목을 분지르고 손목을 쥔 채 춤을 춘다. 출렁이는 불안 속에 위태롭게 떠 있는 조바심이 마침내 꼴깍, 가라앉으면 절망에 닿을까? 혈관에 흐르는 죄책감은 모세관에 고인 채 심장까지 오지 못해, 내 척수는 무고하다.



3.

 번쩍이는 구름에서 문장들이 쏟아져 이만큼 토해냈는데도 시원하기는 커녕 시큼한 악취와 몸서리쳐지는, 대관절 언제 먹었는지도 모를 건더기만 씹히고 있다. 점점 토하기도 어렵다. 이제부터, 혹은 앞으로로 시작하는 문장이 들어서야 할 자리이지만 어째서 자꾸 머리를 빼꼼, 내미는 것은 당분간...


Posted by nighthawk_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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